묵상나눔

    고린도 전서 15:20-34 (해석하기 어려운 두 구절) + 세가지 감사
    2026-06-26 07:31:14
    박영모
    조회수   36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 두 군데가 있네요. 

    하나는 28절 말씀으로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는 개역개정 판 번역의 미흡함으로 생긴 난해 함 입니다. 
    다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권자가 되실 것입니다"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아버지 하나님께 온 세상의 통치권을 바치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주권자가 되실 것이란 뜻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모든 원수를 물리치시고 온 세상에 더 이상 사망이 없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더 이상 사망이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하나님의 통치가 완벽하여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실현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우리는 기껏해야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아프지 않고 고통이 없는 것 정도를 떠올리는데 아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든든하고 좋습니다. 

    두번째는 29절입니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 구절은 대표적인 난해 구절입니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고린도 교회의 잘못 된 대리 세례 관습을 인용한 것으로 보는 해석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가족이나 친구 등 죽은 자들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이 대리로 세례를 받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비꼬면서 동시에 '부활이 없다고 믿는 다면 죽은 자들을 위한 너희들의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라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정말 여러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이런 교회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점 더 참된 교회로 세워졌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고린도 교회는 이후 바울과도 화해하고 외부의 권면을 받아 들였다고 합니다.  
    물론 중간 중간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지만 튼튼한 교회로 자리 매김했고 그리스 지역을 대표하는 대교구로 번성했습니다. 
    주후  6세기 고트족의 침략으로 교회가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그들의 신앙은 그리스 정교회의 모습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형 교회 안에는 갈등이 있으나 건강한 교회는 갈등을 잘 극복한다고 했는데 고린도 교회가 좋은 모범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엄청난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과 같은 영적 지도자들의 계속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몸인 고린도 교회를 끝까지 돌보시고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께 제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를 완전히 의탁합니다. 

    세가지 감사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유형 교회 안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끝까지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침 저녁으로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에 몸과 마음이 가벼워 집니다. 감사 감사 

    4

    댓글

    현송희 2026-06-26 13:05:00
    목사님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망과 부활에 대한 개념이 혼동이 됩니다. 21절에서 '사망'은 아담 이후의 영적인 죽음 상태를 말하고 '부활'은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닌지요? 또한 31절에서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라고 한 것은 육체의 죽음은 아니지요. 그래서 23절의 그리스도 강림 때에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한 말씀은 육체의 부활인지, 영적인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22절의 대조 표현을 통해서 볼 때 '삶'은 '부활'과는 다른 의미로 보입니다.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영모 2026-06-27 07:56:25
    샬롬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고린도 전서 15장의 맥락은 육체적인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을 향해 육체의 부활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영의 영원성에 대해서는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도 인정합니다.) 21절 사망이 아담으로 왔다는 것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육체적으로 죽는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도 육체적 죽음에 대한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부활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22절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육체적으로 죽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육체 역시 부활하여 삶을 얻을 것입니다. 23절에서 그리스도의 강림 때에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한 것 역시 육체적인 부활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31절에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 한 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매일 직면하는 실제적인 생명의 위협과 육체적 고난을 뜻합니다. 즉 육체적으로 죽는 것과 같은 고난을 날마다 겪지만 그가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육체의 부활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헬라인들은 인간을 영과 육을 구분하여 영의 영원성만을 믿었지만 바울은 육체의 영원성도 말함으로 인간이 전인적 통일체 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송희 2026-06-27 13:28:18
    목사님 감사합니다 ! 명쾌하게 설명해주셔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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