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에베소 교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 교회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가장 오래 머물러 활동했던 곳도 에베소입니다.
그만큼 초대교회에서 영적 역량이 집중된 곳이지요.
반면에 로마의 박해와 유혹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로마는 다신교 국가였지만 자신들이 인정만 신만 믿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제외되어 기독인들은 종교적인 박해를 받았습니다.
또한 에베소는 종교와 산업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우상숭배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음란한 종교 축제도 신자들을 유혹하는데 한몫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믿음을 지켰으니 주님께 칭찬을 받을만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십니다.
이 부분이 예전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고전 13장에 보면 사랑은 오래참고.... 모든 것을 견디며 라고 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박해와 유혹속에서도 참고 견디고 열심을 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극기를 위한 극기가 아니었습니다.
3절에서 분명 '내 이름을 위하여' 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 참고 견뎌온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에 대한 사랑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위해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들 나에대한 순수한 열정이 식었어 너희들의 사랑은 수순하지 않아' 라고 지적한다면 그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이 첫 사랑을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석합니다.
아마 그들은 로마의 유혹과 니골라당의 침투를 막아내기 위해 엄격하게 성도들을 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을 사랑이 아닌 규율과 통제로 대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돕고 섬겼든 그들이 어느새 정죄하고 비난하게 된 것이지요.
5절에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권면에서도 이것이 드러납니다.
처음 사랑은 처음에 가졌던 순수한 "마음"이 아닌 처음 "행위" 입니다.
형제 자매를 용납하고 베풀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감싸준 "행위이"지요.
이와 같은 해석은 성경의 전체의 맥락과도 일치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할 때 크게 두가지를 지적했습니다.
하나는 우상숭배, 하나는 형제자매를 억압하는 행위.
지금 에베소 교인들은 우상숭배에 저항하기 위해 인내하고 참고 견뎠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랑일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이웃사랑과 연결되지 않을 때 신앙은 종교가 되고 율법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를 얻고 다른 하나를 잃는 정도가 아닌 주님께서 촛대를 옮기신다고 할만큼 모든 것을 잃는 일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 사랑의 행위로 나타날 때 온전한 사랑으로 완성이 됩니다.
대광교회가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마지막 때, 사탄의 공격과 유혹히 심할 수록 서로 더욱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세가지 감사
처음 사랑에 대해 깊이 묵상할 수 있음에 감사
서로 사랑하는 대광공동체 주심 감사
어제 간단한 수술(시술) 했는데 잘 마쳐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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