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사과를 고를 때도 기준이 있습니다.
사과 하나를 사는 간단한 일이라도 나름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맞는 것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나쁜 사과보다 좋은 사과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것을 좋아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그것이 내 기준에 부합하면 부합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반대로 나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일도 그런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어떨까요?
내 기준에 부합하고 좋아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내 기준에 사랑할 만한 조건이나 자격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상은 사랑받을 만한 조건이 있는지 증명하기를 늘 요구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기준에 들기 위해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기준에 통과한 사람들이 사랑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세상의 방식과 정반대로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직업적 천대받거나, 성품이 모났거나, 관계에 흠이 있던 이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중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할 마음까지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두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은 한계까지 사랑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사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한계를 뛰어넘어 사랑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대상의 조건과 상황과 환경을 넘어서는 사랑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모났지만, 변화가 더디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증명하시듯 가장 낮은 종의 모습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 사랑의 온도가 우리를 살아나게 합니다. 오늘도 그 사랑이 나를 향하고 있음에 감격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나를 넘어 이웃들에게 흘러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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